소설 『인연』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여성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연인이나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던 얀 안드레아 라는 한남자가 이었습니다.
뒤라스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후부터 얀은 모든것을 포기하고 뒤라스의 작품에만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뒤라스에 대한 경외감 을 주체할 수 없었던 얀은
5년 동안이나 팬레터를 보냈는데요.
단 한 번도 회신을 하지는 않았지만 뒤라스는 얀의 존재를 알고, 그와 소통
하고 있었죠. 어느 날 뒤라스는 자신의 신작을 얀에게 보내줍니다.
그들은 평범한 작가와 독자, 그이상의 감정을 나누구 있던 셈이죠.
그 이후 뒤라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얀은
결국 뒤라스를 만나 함께 살게 됩니다. 얀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뒤라스의 사랑이 아닌,
철저하게 뒤라스의 작품세계를 위한 정신적인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뒤라스는 그런 얀에게 얀 르메에서, 얀 안드레아 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데요.
얀은 겸허히 그녀가 지어준 이름을 받아들입니다. 이름을 바꾸면서 얀은 뒤라스를
위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이후 얀은 뒤라스의 작품에 나오는 가상인물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녀를
성실히 돌보면서 세상을 등진 채 완연하게 뒤라스를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뒤라스는 얀을 통해 시대를 풍미하는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죠.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 『인연』으로 출간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뒤라스의
작가적 입지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여전히 프랑스 문단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죠.
얀이 이름을 바꾸고 뒤라스를 위해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가로수 길에도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바로 와인 레스토랑 ‘마마 논 마마’인데요. 이전 이름은 ‘와인다인’이었죠.
‘마마 논 마마’라는 말은 어릴 적 꽃 점을 치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되뇌던 프랑스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카시아 잎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데이지 꽃으로 꽃 점을 쳤는데요.
데이지 꽃을 한 장씩 떼는 동안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그 순수한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군요. 연인 같은 친구를
의미하는 아카시아향의 은은함과 데이지의 청순함이 느껴지는 듯 한데요.
그 마음처럼 요리나 와인을 준비하면서 손님들이 좋아하실까, 아닐까 고심하며
최고의 것을 내놓겠다는 정성스런 마음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면서요.
직원분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마 논 마마’가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철저히 손님을 위한 가게로 새로 태어난 것 같더군요. 마치 뒤라스를 위한 얀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가게 인테리어부터 셰프까지 환골탈태했다는 ‘마마 논 마마’는
내부 인테리어도 무척 고급스럽고 클래식했습니다.
복층 형태로 나뉘어 일 층과 이 층 모두 대형 와인셀러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고
아치모양의 벽과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까지, 유럽 휴양도시의 별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안락하게 느껴져서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에피타이저로 나온 바게트를 먹으며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다비도프를 꺼내 물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평론가 벤 존슨은 ‘벗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서’를 통해 담배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담배, 먼 옛날 테스피스가 마시던 나의 감로주,
루터의 맥주가 부럽지 않아 휘파람이 절로 나오네
푸짐하게 먹고 적당히 취하세나
‘하늘나라에서 맥주를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마신다’고 표현할 만큼
애주가로 잘 알려져 있는 루터의 독일 맥주와 그리스의 시인 테스피스의 감로주를 빗댄 것이죠.
이처럼 저에게 담배는 마음의 여유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테라스에 앉아 좋은 사람과 운치를 즐기니 부러울 것이 없더군요.
‘마마 논 마마’는 메뉴도 무척 다양했습니다.
이날 저는 ‘쇠고기 카르파치오’와 ‘키조개구이’를 먹었는데요.
와인은 로 쏘 델 피에바노를 골랐습니다. 로 쏘 델 피에바노는 드라이한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보르도 스타일의 친숙함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육류 요리와 무척 잘 어울렸는데요.
이태리 와인의 클래식함과 보르도의 친숙함을 함께 맛볼 수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레드와인 중 하나입니다.
기대에 걸 맞게 음식도 꽤 훌륭했는데요.
특히 키조개구이는 쇠고기의 육질처럼 무척 부드럽고 고소했습니다.
함께 슬라이스 되어 구워진 채소들의 향이 잔뜩 배어 있어 씹을 때마다 입안에 퍼지는
향 또한 일품이더군요. 카르파치오는 우리나라의 육회처럼 잘하는 곳과 못하는 곳이
현저하게 차이 나는 음식인데요. 불에 스친 듯 거의 날것으로 먹는 요리인 만큼,
고기 본연의 맛을 얼마나 살려내는가가 관건이죠.
‘마마 논 마마’의 카츠파치오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소스 향을 과하게 내지 않아서 파마산 치즈와 채소들이 고기의 맛을 덮지 않고
받쳐주는 듯했습니다. 인테리어부터 요리까지, 손님을 위하겠다는
‘마마 논 마마’의 마음가짐이 여러모로 느껴지더군요.
먹을 것을 대접하는 일은 언제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대접 받는 사람은
그 음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준비가 곁들여졌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함을 갖게 되죠.
하지만 요즘에는 음식점도 대형 체인점들이 많아지면서 대접하는 요리의
본질보다는 마케팅에 치중하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마마 논 마마’는 가로수길의 중심 길에서 벗어나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맛과 서비스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만 되면 빠르게 손님을 유치할 수 있겠죠.
그러니 지리적 약점을 위해 이런저런 마케팅을 펼쳐볼 법 한데도, 요란한 움직임 없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할 뿐이죠.
손님을 많이 끌어들이겠다는 마케팅보단 대접하는 요리의 본질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날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마마 논 마마’의 의미를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되더군요.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또 헤아려 보는 일이 최근에 몇 번이나 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요.
성숙해지는 것과 순수함을 잃는 것은 확연히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꽃 점을 치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결국 상대를 배려하고 헤아리는 성숙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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